개관 10–18시
작가이름
최현석전시명
《관습의 딜레마》기간
2017. 09. 21 - 10. 20장소
OCI미술관전승과 전복, 세속화의 이중 전략
최현석의 대다수의 작품은 기록화의 전통을 따른다. 먼저 형식적 측면을 보면, 작품의 기본적인 구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사건의 풍경을 펼쳐서 조감하듯 보여주는 다중적인 시점이 일제히 기록화의 전형을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조선의 여느 의궤도(儀軌圖), 반차도(班次圖), 계회도(契會圖) 또는 행렬도(行列圖)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또한 내용적 측면을 보면, 그의 회화는 “특정한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그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달한 그림”이라는 기록화의 정의에 분명하게 부합한다. 전통적인 기록화가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와 사건을 그린 궁중기록화(宮中記錄畵)와 양반 관료들이 자신의 관직 생활과 관련된 기념할 만한 사건을 그린 사가기록화(私家記錄畵)로 대별될 수 있다면, 최현석의 기록화도 국가와 사회의 기억될 만한 사건을 그린 기록화와 그가 집안이나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사건을 다룬 기록화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처럼 최현석은 고전적인 기록화를 현대적인 맥락에서 전승하는 화가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전통적인 회화 장르를 그저 답습하는 작가는 아니다. 그는 기록화를 전복적인 방식으로 전승한다. 그에게 전승은 반드시 전복을 수반하는 것이다. 작가가 스스로 주장하듯이 그의 회화는 “기록화를 전복하는 기록화”인 것이다. 이때의 전복도 형식과 내용의 구분에 따라 서술될 수 있다. 먼저 최현석의 기록화는 전통적인 기록화의 형식만을 전승하지 않는다. 그의 화면을 채우는 산, 나무, 구름, 파도 등의 형상은 매우 반복적이고 도안적인 패턴을 띠는데 그것은 과거의 기록화가 아니라 민화나 고지도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리고 마치 커다란 울타리처럼 산맥이나 성곽으로 화면을 뱅 둘러싸는 양식도 우리가 고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과거의 기록화가 주로 값비싼 비단에 그려졌던 반면, 최현석은 가장 저렴한 재료인 마(麻)를 의도적으로 선택해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이처럼 작가는 전통적인 기록화를 참조하지만 다른 종류의 형식과 재료를 도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 내용의 측면에서도 그의 회화는 과거의 기록화와 다르다. 궁중기록화가 왕실과 국가의 주요 행사와 사건을 그리고 사가기록화가 양반 관료들의 관직 생활과 관련된 기념할 만한 사건을 그리는 데 반해, 최현석의 기록화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수의 시민에게 절실하게 다가올 만한 사건을 대상으로 삼는다. 과거의 기록화가 지배권력의 정당화와 공고화에 이바지하는 것이었다면, 최현석의 그것은 오히려 그 권력을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지배권력의 ‘영광’이 아니라 ‘치부’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역시 이번 전시에서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기록화를 전복하는 기록화”가 눈에 띈다. 특히 이번엔 대침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장년의 현실을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기록한 회화들이 선보인다. 일반인 같은 군인, 또는 군인 같은 일반인, 즉 예비역들이 훈련소에 모여서 천태만상의 군상을 이루고 있다(<예비군훈련도(豫備軍訓鍊圖)>). 군복을 벗어던진 그들은 노동 같은 연회, 또는 연회 같은 노동, 즉 직장의 회식자리에 모여서 각자의 직급에 따라 갖가지 행태의 역할극을 벌이고 있다(<직장회식계회도(職場會食契會圖)>). 이 고달픈 연회에 어떻게든 발을 들여놓고자 사회 초년생들은 면접관 앞에서 과장된 독백을 구사하며 오늘도 데뷔가 유예된 리허설을 이어가고 있다(<사회초년생관문도(社會初年生關門圖)>). 그런가 하면 그들은 주택이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한 현실 속에서 자의든 타의든 한군데에 정착하지 못하는 ‘유목민’이기도 하다(<신유목민도(新遊牧民圖)>).
최현석의 전복적 기록화를 채우는 풍자와 비판이 웅대한 규모로 표현된 회화가 이번 전시의 도입부에 드리워진 <현실장벽도축(現實障壁圖軸)>이다. 가로 1미터, 세로 4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족자에는 오늘날 청년의 막막하고 고단한 일상이 험준한 암벽을 어렵사리 기어오르는 몸짓에 빗대어 수직의 파노라마로 표현되어 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저마다 독특한 동작으로 암벽을 기어오르는 수많은 청년의 형상이 화면에 빼곡히 들어 있다. 말단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부터 상부에 다다른 인간까지 수직적 위계에 따라 처한 상황은 천차만별이지만 그들은 모두 추락에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화는 이 시대의 모든 청년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실존적 불안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빈부의 격차, 출신의 격차 등을 이유로 저마다 등반의 시작이 다를뿐더러 그 과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암벽의 밑바닥부터 맨몸으로 위태롭게 안간힘을 쓰며 기어오르는 반면, 누군가는 적당한 높이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암벽의 정상까지 단번에 올라간다. 요컨대 이 회화 속에는 현실이 곧 장벽인 시대에 직면한 청년의 실존적 불안과 사회적 불평등이 복합적으로 뒤섞여 표현되고 있다.
기록화를 전복하면서 전승하는 최현석의 전략은 기록화의 ‘세속화(世俗化)’라고 명명될 수 있다. 조르조 아감벤은 “세속화한다는 것은 단지 분리들을 폐지하고 말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새롭게 사용하고 그것들과 유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기록화가 왕실과 관료로 대변되는 지배계급을 그 외의 피지배계급과 분리하기 위해서 제작된 것이라면, 최현석의 기록화는 그 목적을 무효화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작법을 차용하여 새롭게 사용하고 풍자와 비판을 구사하며 유희하는 것처럼 보인다. 즉 최현석은 기록화의 본래적인 목적을 거부함으로써 그것을 전복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록화를 유희의 방식으로 새롭게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전승한다. 이러한 전복과 전승의 동시적 수행을 통해 기록화는 세속화된다. 즉 사회계급의 분리에 복무하기를 그치고 공통의 사용 대상으로 갱신되는 것이다.
세속화는 본래적으로 종교와 관련된 용어이다. 세속화의 일차적 대상은 일상과 분리된, 종교적이고 신성한 존재인 것이다. 종교가 세속의 인간을 성인으로, 세속의 사물을 성물로, 세속의 장소를 성소로 격상시켜 분리하려는 활동이라면, 세속화는 그렇게 분리된 신성한 모든 것들을 다시금 세속에 되돌려주는 활동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현석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성함에 관한 회화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고립무원(孤立無援)>에서 그가 기록한 탑골공원의 모습은 마치 퇴락한 성소처럼 보인다. 한국 최초의 공원이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발상지로 유서 깊은 이곳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상실한 장소로서 갈 곳 없는 노인들의 쉼터가 되었다. 최현석이 기록한 공원 안팎의 살풍경은 이곳이 신성한 분리의 장소이기는커녕 ‘고립되어 구원을 받을 데가 없는(孤立無援)’, 차라리 적극적인 세속화를 갈구하는 장소로 보이게 만든다. <벌초대행도(伐草代行圖)>는 조상들의 산소가 밀집한, 가문의 신성한 선산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산소로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선산의 벌초는 이제 후손들이 아니라 대행업체의 몫이 되었다. 이곳 역시 과거의 신성함은 명목상 남아 있을 뿐이고 실상은 서비스업의 작업장일 뿐이다. 이처럼 최현석은 여러 층위의 신성한 장소가 허울뿐인 분리를 유지한, 세속화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우상협치십곡병(偶像協治十曲屛)>과 <종교비치도(宗敎備置圖)>는 직접적으로 종교를 소재로 삼은 회화들이다. 전자는 예수, 부처, 알라 등 여러 종교의 신적 존재를 기존의 관습을 참조해 사실적으로 그린 병풍이며, 후자는 고지도의 형식을 빌려 서울 시내에 분포한 여러 종교의 성전들을 배치하고 그곳에서 일어난 몇몇 사건들을 묘사한 기록화이다. <우상협치십곡병>은 얼굴을 지운 각 종교의 신들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들 각자의 개별적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그들이 공유하는 도상적 유사성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여러 종교의 개별적 신격은 서로 상승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쇄되어 엇비슷한 관습적 이미지의 패턴으로 환원되고 만다. <종교비치도>는 교회, 성당, 사찰, 모스크 등을 한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종교 간의 개별적 차이를 약화시키고, 각각의 사원에서 일어난 사회적 사건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곳들이 세속과 온전히 분리된 신성한 장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침내 최현석의 세속화 전략이 가닿은 대상은 한국화 자체의 신성함이다. <신기루_매난국죽(蜃氣樓_梅蘭菊竹)>은 제목이 암시하듯 한국화의 가장 고결한 형식인 사군자(四君子)를 소재로 삼는다. 이번에도 그는 전통적인 사군자 형식을 전승하면서 동시에 유희적으로 전복하는 세속화 전략을 구사한다. 사군자의 전통적 재료인 장지를 선택하고 정형화된 양식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충실한 전승의 태도를 취하지만 온도에 따라 변색하는 시온안료를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방식의 전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전시공간의 기온과 관객의 체온에 반응하여 그 형상이 마치 신기루처럼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리하여 한국화의 불가침의 신성한 주제인 사군자를 일종의 유희적인 ‘인터랙티브 아트’로 변형시킨다. 매난국죽의 되풀이되는 나타남과 사라짐은 세속화의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예시한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또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신성한 존재는 전승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전복의 대상인 것이다. 최현석의 회화 속 인물들의 지워진 얼굴은 모든 표정을 허용할 수 있지만 아무 표정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모순된 상황을 긍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세속화의 딜레마이다. 전승과 전복의 길항작용 속에서 유희의 제스처를 거듭해야 하는 것. 매난국죽을 표출하고 은폐하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 끊임없이 사유하는 판단유보의 시간 속에서.
- 김홍기 (미술비평가)
작가 약력
학력
2020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건축설계학과 재학중
2013 중앙대학교 한국화학과 석사 졸업
2011 서원대학교 미술학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19 허물의 반격,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2017 관습의 딜레마, OCI미술관, 서울
2013 란(亂),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2 記錄精神-현실을 직시하다, Artspace H, 서울
주요 단체전
2021 데이터로상상해요: 데이터시각화의열가지방법>, 경인교대지누지움, 인천
2019 프리뷰,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대전
2018 크립토스,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난지도에서 難地圖찾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내일의 미술가들, 청주시립미술관, 청주
SHOW!ROOM!,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서울
2017 두번째 도시, 세 번쨰 공동체, 스페이스XX/임시공간, 서울/인천
STAGE 14, 리빈갤러리, 부산
로터스 랜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광주
플랫폼 아티스트,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플랫폼 아티스트,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6 #계념미술,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WET PAINT,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別★同行, OCI미술관/예술의전당/문화예술회관/중앙아트홀, 서울/군산/광양/포항
도큐멘트 10년의 흔적, 10년의 미래,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5 멈추고, 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나는 무명작가다, 아르코미술관, 서울
青年艺术100 5주년 특별전, 全国农业展览馆, 북경, 중국
Cre8tive Report, OCI미술관, 서울
2014 KOREA TOMORROW,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서울
青年艺术100, SZ아트센터, 북경, 중국
有中生有-青年艺术家邀请展, 青研會, 북경, 중국
넥스트코드,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대전
21세기 풍속화,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이천
2012 한지프로젝트 뉴욕(한지 메타모포시스), 루빈미술관, 뉴욕, 미국
AHAF HK12 Young Artists 특별전,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중국
수상 / 선정
2016 2017 OCI YOUNG CREATIVE, OCI미술관
2013 NEW HERO 선정작가상, 월간 Public Art
2011 동방의 요괴들 Best of Best, 월간 Art in Culture
2009 제46회 목우공모미술대전 소명상, 목우회
레지던시
2019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6기 입주작가, 대전문화재단, 대전
2018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6-17 인천아트플랫폼 7기 입주작가, 인천문화재단, 인천
2014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2012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이메일
arthyunse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