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관
작가이름
조혜진전시명
《변두리》기간
2011. 09. 01 - 09. 21장소
OCI미술관투명한 환幻의 풍경들
그가 나에게 114장의 사진을 보내왔다. 종로구 창신동 재개발지와 서대문구 가재울뉴타운 지구의 철거 예정지 풍경이다. 달뜨는 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았기에 달동네라 불렀던 그 풍경들이 참혹했다. 말이 좋아 달동네지 무허가주택과 노후불량주택이 겹겹이 쌓인 도시저소득층 밀집지역이 아닌가. 버리고 떠난 자리에 누군가 살았던 삶의 흔적들이 말라서 나뒹구는 꼴이 안타까웠다. 힘든 현실의 껍질들만 남아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는 그 빈 주검들이 힘에 겨웠다. 쓸모 있는 것들조차 쓸모없이 남아서 생을 정지한 사물들이 눈에 밟혔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은 철거에 쓸려 흔적도 없이 지워질 것이다. 기쁘고 때론 슬픈 추억일지라도 돌아갈 집이고 고향이었던 가파른 산동네의 둥지는 깡그리 해체되고 파괴될 것이다.
저 모든 풍경은 산재다
옛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어야 한다고 시끄럽게 떠들던 시대가 있었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으면 온 동네 어른들이 쏟아져 나와 새 길 새 도랑을 쓸고 닦던 그 시대. 아줌마 파마처럼 온통 슬레이트 헤어로 치장한 근대화의 지붕들이 전국을 휩쓸자 이번에 정체불명의 대머리 양옥집이 유행을 탔다. 아마도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 도시외곽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도시에 살았으나 저소득층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외곽으로 밀렸다. 이곳저곳 외곽의 구릉지는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었고 판자촌은 벽돌집이나 다세대 주택으로 옮겨 타기도 했지만, 단칸방살이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198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 부산, 대구 등 6대 도시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502개 지역에 총 32만 6,000가구, 131만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다. 서울시만 75개 곳, 378만 평, 8만 800가구 30만 5,000명이었다. 2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8년 전인 2002년 대한민국은 낙후된 시가지 주거환경을 정비하는 새로운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뉴타운 사업이었다. 뉴타운 사업은 정치인들에게 주민의 환심을 유토피아로 채우는 기름불과 같았고 그래서 서울은 빠르게 뉴타운 공화국으로 돌변했다. 뉴타운 공화국의 집 있고 돈 있는 시민들은 쉽게 아파트로 갈아타면서 중산층 대열에 끼어들었으나 집도 절도 없는 이들은 재개발지가 될 구릉지의 집들로 삶을 전전했고 그도 아니면 쪽방촌에 기어들었다.
2002년 이후 수도권의 뉴타운 사업은 지우고 세우기를 쉼 없이 반복하고 있다. 수십 년을 걸었던 길들이 삽시간에 사라지고 집들의 풍경이 엎어졌다. 보상받은 사람들도 흔적 없이 사라졌고 불 꺼진 집들에서는 쌓인 세월만큼 어두운 유령들이 겉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새벽부터 기계들은 부산하게 빈집들을 먹어 삼켰고 집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쓰러졌다. 그 모든 풍경은 산재였다. 시인 송경동이 “내가 자연을 그리워할 때 그것은/모든 조화로움으로부터 쫓겨난/근본적인 산재에 대한 항변이다”라고 했을 때의 그 산재풍경들.
보라, 저 거리에 나온 모든 상품들도
불구의 몸으로 산재를 앓고 있다
보라, 저 거리에 선 모든 나무들도
팔다리 잘리며 산재를 앓고 있다
보라, 저 들녘 강물의 모든 실핏줄들도
검은 가래에 막혀 산재를 앓고 있다
보라, 저 하늘 위에서 내리는 모든 눈도 비도
산재에 물들어 있고, 보라
저 하늘의 오존층도 우리의 폐처럼
숭숭 구멍 뚫리고 있다
– 송경동,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중에서
조혜진은 카메라를 들고 그 산재의 풍경들 속으로 잠입했다. 풍경의 전체가 아니라 세부의 세목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그가 ‘조각’으로 지어야 할 집들의 구조를 찍었다. 그 구조는 빈집의 오래된 뼈였다. 굳게 닫힌 창문, 누렇게 얼룩진 벽지, 울퉁불퉁 꾸불꾸불한 계단 골목, 후문과 장독대를 지지하는 돌담 축대, 아스라이 견디고 선 전봇대와 산발한 전선, 멀쩡하게 살아서 산 사람을 기다리는 온전한 빈 집, 묶인 채 버려진 책들과 앨범,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연예인 화보, 가파른 언덕길과 철제 울타리, 죽어서 엎어진 화초들과 화분, 걷어가지 못한 빨래, 창틀에 걸어 놓은 수채화 하나, 뚝 끊어진 전선과 두꺼비집, 회칠한 벽들에 갈겨놓은 ‘철거’ 글씨, 해체 철거된 집터에 고인 검은 물, 콘크리트를 지탱했던 무수한 철근들…….
탐색이 짙게 밴 그의 시선에는 결핍을 채우려는 의지가 엿보일 만큼 집요하다. 작업용 답사사진으로 보기에는 풍경의 세목들이 팔팔하다. 텅 비고 말라서 허허로울 수밖에 없는 것들이 파닥거린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기갈 들게 했을까? 그는 불현듯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곧 일을 시작했어요. 가난했고 배우지 못한 엄마의 과거가 힘들었죠. 창신동은 40년 전인 1970년대에 엄마가 살았던 동네에요. 부정하고 싶었던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저는 그곳에 가게 되었죠. 재개발로 무기력하게 사라지는 산동네를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시작했던 것이 그 즈음인데, 가서 보니 산의 반은 집이고 나머지 반은 터만 남은 흙이었어요. 그 사이를 초록색 방진막이 풍경을 둘로 가르고 있더군요.”
그곳에서 그는 풍경의 흰 뼈를 보았다. 사골처럼 오래 고여서 삶의 진한 국물 싹 빠져 버린 달동네의 흰 뼈. 수십 년간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지탱한 것은 건강한 달동네의 뼈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 뼈의 국물로 살았을 것이다. 또한 그곳은 엄마의 풍경이기도 했다. 조혜진의 인생 30년이 엄마의 한 생을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그 풍경. 손세실리아 시인이 그의 시 ‘곰국 끓이던 날’에서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희멀건 국물,/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라며 통곡했던 그 국물의 흰 뼈. 그는 그래서 투명한 재활용 페트 용기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달동네의 집들을, 국물 쏙 빠진 흰 뼈의 집들을 다시 짓기 시작했다.
투명한, 흰 집들과 빈 사람들
조혜진의 집은 철거 예정지의 달동네로부터 왔다. 그는 서울의 뉴타운 지구 재개발지에서 찍어 온 사진 속 집들을 재현했다. 집들은 비었으나 무거웠다. 무거운 집들이 조각 작품이 되었을 때는 무겁지 않았다. 투명 플라스틱 페트로 지은 집들에는 세월도 현실도 사건도 그 무엇도 묻어있지 않았다. 집들은 집의 형체로만 남았을 뿐 사람의 그림자 하나 깃들어 있지 않았다. 비어서 투명해진 그 집들이 아팠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 사이가 뻐근거렸다. 나는 그 통증이 나의 통증인지 집들의 통증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해체 철거된 집들이 하나 둘 그의 작업실에서 되살아났다. 그는 이 집과 저 집을 따로 지었고 저 집에 붙은 옆집을 이어서 지었다. 한 채, 두 채, 세 채, 그는 동네를 통째로 옮겨 오려는 듯 쉼 없이 집들을 지었다. 집들은 어두운 전시장에서 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났다. 심해에서 빛을 발하는 물고기들처럼 집들은 고요했고 그래서 선명했다. 그 많은 집들이 층층이 산동네를 이루며 공중에 설치된 풍경은 영락없이 달동네였다.
그러나 먹먹한 어둠일수록 더 맑게 투명해지는 이 흰 집들의 정체는 밝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엄마의 뿌연 눈물일 수밖에 없는 깊은 통각의 뼈, 비어서 투명해진 현실과 비현실의 풍경, 눅진한 삶들의 흔적만 남아서 탈각된 집들의 허물이 조혜진 조각의 미학적 실체들이다. 그는 통각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맑아지는 눈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산세와 지세에 눌려 정형 따위는 갖출 수 없었던 집들의 고단한 몰골과 그런 현실에 깃들었을 지난한 삶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자 완전히 비어서 말라버린 고치 집에 소스라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집들은 투명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투명해서 아픈 것이고 맑아서 안타까운 것이다. 그 집들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빈집의 ‘비어있음’을 안타까워했던 기형도의 「빈집」과 다르지 않다. 모든 빈집은 사람이 비어서 발생하는 사태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중에서
기형도의 빈집은 조혜진의 빈집을 채운다. 기형도의 시어들은 조혜진의 미학적 개념어와 거의 일치한다. 가난과 이주의 정처 없음이 절박하고 결국 모두 흩어졌으나, 빈집에 갇혔기 때문이다. 무엇이 갇힌 것일까? 삶의 현실이다. 숱한 현실의 껍질들이다. 기억으로는 모자란 껍질들의 회한이다. 조혜진의 집들은 회한의 껍질들이다. 그 껍질 속에서 삶은 변태를 꿈꾸며 황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황홀 따위는 ‘환幻’에 불과하다. 그러니 빈집에 갇힌 수십 년의 짧았던 밤들이 산산이 흩어질밖에. 그 흩어진 것들의 한 획들이 모여 한 조각 한 조각 집을 이뤘을 것이다. 사람을 이뤘을 것이다. 조혜진이 이룬 달동네는 그렇게 흩어진 것들의 한 조각 환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그가 이룬 집과 사람들의 환이자 환의 섬이다. 집들의 일부를 공개하거나 동네라 해도 지극히 부분이었던 것을 하나의 전체로 만들고자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이 환의 공간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빈집과 환영뿐인 사람들 곁으로 우리를 직립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삶이란 환에서 시작해 환으로 돌아간다는, 지극히 낭만적인 진리를 일깨운다. 그러나 그가 세운 낭만의 진리야말로 우리가 상실했고 또한 묻어버렸던 삶의 실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 김종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