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10–18시
작가이름
장파전시명
《세계의 끝》기간
2011. 09. 01 - 09. 21장소
OCI미술관밀폐 공간의 반복과 괴물의 탄생. 강박장애적 구조주의자의 진술
<세계의 끝>이란 큰 주제 밑으로 매달린 연작들은 대표 도상 하나로 손쉽게 수렴되고 기억될 수 있다. 투시 원근 구도로 유독 강조된 움푹 팬 검은 웅덩이가 <세계의 끝> 전체를 규정짓는 도상이니까. 아니 검은 웅덩이와 그걸 둘러싼 육면체 공간 전체가 도상인 게 맞다. 연작 타이틀 <세계의 끝>이 암시하는 종말론적 이야기를 조형적으로 완성한 양, 예측불허의 활화산이 마치 이 세상을 끝장 낼 기세로 입 벌린 검고 깊은 웅덩이. <세계의 끝>은 그렇게 인지된다. <세계의 끝>은 2점 투시법으로 근경의 웅덩이를 1점 투시법으로 원경의 소실점을 제각각 부각시키고 강화한다. 미세하게 변형된 검은 웅덩이의 반복 재현이 세상의 파국을 가시화한 무엇처럼 읽힌다면, 화면 중심 상단에 종심 깊게 자리한 네모진 소실점은 밀실공포로 채워진 화면에서 뭐든 단숨에 빨아들일 공포의 블랙홀처럼 보인다. 1점 투시와 2점 투시가 혼재된 공간 구성이 만든 심리적 불안의 밀도 때문에, <세계의 끝>은 작품 단 한 점만으로 승부걸기보단 미세한 변형체 연작을 나란히 열거할 때, 전달하려는 내러티브가 온전히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밀폐된 육면체 내부를 응시하는 시점, 그것이 <세계의 끝> 도상의 구도다. 그 도상은 지나간 작업 연보 속에 이미 소리 없는 흔적을 수차례 남긴 바 있다. <저지선>(2009)과 <경계가 없어진 소리>(2008)는 단일 작업의 얼굴을 하고 <세계의 끝>과 유사한 구도를 취한 바 있다. 또 그 도상은 <폭로하는 입>(2009) 의 초대형 화면 왼쪽 귀퉁이에 그림의 구성요소로 개입한 적도 있다. 조연에 머물던 이 육면체 실내 공간은 2010년 들어 <세계의 끝>이라는 독자적인 연작의 자격으로 주연처럼 제 새끼를 치고 있다.
화면 위에 동일한 형태를 반복해 작품 세계를 규정하는 도상의 전례는 <세계의 끝> 이전에도 장파(1981년생)의 작업 연보에서 꾸준히 관찰된다. 높은 지평선 위로 자리한 한적한 미지의 벽돌 가옥의 존재감은 짧은 작업 연보 속에 이미 친숙해질 만큼 되풀이 되었다. <세계의 끝>의 실내 공간 도상과 함께 <폭로하는 입>(2009)속에 나란히 등장한 적도 있고, 채색과 구성을 미세하게 변주시켜 수차례 화면 속 주연으로 출연했다. <모두 그것을 미친 여름이라고 불렀다>(2009), 4색으로 변주된 벽돌가옥 4점을 하나로 묶은 <붉은 벽돌집>(2008), <벽돌집>(2010), 그리고 차량 조수석에서 차창 밖을 바라본 시선 속에 벽돌집을 삽입한 <당신의 왼편>(2010)까지 변형된 반복은 무수하다.
중복 출연으로 각인된 장파의 조형 도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건 단연 2008년 <식물들의 밀실>연작의 일부로 제작된 <폭력의 순환>(2008)에서 정원의 수풀을 앞발로 헤집는 정체불명의 회색 개다. 개의 입은 SF영화 <에일리언>의 괴물의 입을 닮았고 개의 흥분 상태를 지목하려 했던지 생식기는 민망할 만큼 붉다. 이 괴견(怪犬) 도상은 회화 소품 16점을 모자이크로 구성한 <식물들의 밀실>(2008), <그들이 인지하는 미시적이고 거대한 세계를 보세요!>(2008)에 출연했고, 급기야 무대미술을 연상시키는 설치물 <목격자의 의무> 속에 어설픈 모양새의 입체조형물로 가담하기도 했다.
<세계의 끝>의 흑백 육면체 실내와 검은 웅덩이의 종말론적 도상(2010년)은 중복되어 제시될수록 미학적 설득력을 높였다. <식물들의 밀실>에서 괴수의 입을 단 정체불명의 개 도상(2008년) 역시 전하려는 메시지가 뭐건, 두어 번 이상의 노출로 전달력을 상승시켰다. 고안한 도상을 반복시키는 장파의 전략은 보는 이의 뇌리에 잔상을 각인시켰고 더불어 도상 자체의 권능도 강화시킨다. 장파의 작업이 도상 반복을 추종하는 까닭은 뭘까. 동일 행동의 반복으로 강박적 사고를 차단하려는 시도를 강박장애(obsessive compulsive disorder)라 부른다. 반복된 행동이 불안의 원인을 일시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 행동은 불안감을 다만 한시적으로 차단할 뿐, 원천적으로 제거하진 못하는 걸로 알려진다. 반복은 계속될 밖에.
장파 작업 연보의 초반부에 속할 <식물들의 밀실>에선 작가 개인사를 둘러싼 사연이 작가 노트에 비교적 소상히 진술된다. 약술하면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가족 구성원이 정상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부당 대우를 받고, 그는 다시 자신의 지인들(작가를 포함한)에게 그가 받은 부당 대우를 되갚는다는 체험담이다. 순환되는 불편의 악순환을 가까이서 관찰한 장파에게 그것은 작업의 동인이 되었다(작가가 감수한 고통의 상세한 내막까지 소개되지 않았다). 정상의 기준에 맞춰 차별과 폭력이 악순환 되는 현장을 가까운 가족의 굴레에서 개인사의 일부로 겪은 장파는 당시 경험의 인상을 최대한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뒤늦은 자기 위안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식물들의 밀실>의 작가 노트는 내막까지 정확히 기술하진 않는다. 해소해야할 고통임과 동시에 숨기고픈 사실이어서일 게다. 그림 역시 작가노트처럼 상세한 진술은 자제한다. 전말을 정확히 파악하려면 당사자인 장파의 구술이 보태질 때 가능하다. 의도적으로 내막을 불분명하게 처리했지만, 작품이 보는 이에게 주는 각인 효과는 높다. 작가가 고안한 도상의 시각 충격과 도상의 반복 때문이리라. 명백하게 스토리텔링을 열망하면서도(하소연 하고픈 개인적 고통), 모호한 대리자를 내세운다(숨기고픈 사실). 작가의 대리자는 기괴한 유기체(<식물들의 밀실>의 개)의 강렬한 인상으로 등장하거나, 반복 재현으로 무언가를 강조하는 무기체(<세계의 끝>의 웅덩이 패인 육면체 실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작가가 체험한 구체적인 과거사는 모호한 도상의 반복을 통해 침묵하는 추상 기념비처럼 변형되어 보는 이에게 기억된다. 무서운 강박의 힘.
상대적으로 초기 작업(2008년 이전)에서 장파는 지난 개인사에 대한 스토리텔링 욕망을 드러내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림을 통한 직접 진술보다 장황한 해설적 제목으로 간접 진술하는 우회로를 택한다. <그들이 인지하는 미시적이고 거대한 세계를 보라!>처럼 장황한 명령문을 통해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거나, 일반적인 전시 도록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방대한 작가 해설이 삽입된 예를 보면 그렇다.
정상과 비정상을 완고하게 나누고 차별하는 ‘세간의 정상적 기준’을 향한 작가의 거부감은 <식물들의 밀실>에서 상반된 개념 둘을 모호하게 혼재시키며 개진된다. 가해와 피해, 정상과 비정상, 구상과 추상, 서사의 명확성과 시각 암시의 모호성 사이의 혼재. 장파의 개인사에 따르면 분명한 피해자에 속할 개마저 그림 속에선 마치 가해자인양 묘사되어 보는 이의 추론을 거스른다. 스토리텔링의 열망도 명백해 보이는데, “이야기라는 요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2009년 2인전 도록에서)고까지 고백한다. 권위적인 지식 체계와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표면화된 건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구작에서도 관찰된다. <아트 바이블>(2006)은 시각문화를 서열로 확정하는 제도이론의 무한 권능을 제도종교의 교조적 경전에 빗댄 장파의 설익은 패기를 보여준다. 그 작품은 작가의 여정이 <세계의 끝>에 당도하게 된 출발점처럼 읽힌다.
제도권 예술이론과 예술작품 사이의 종속관계를 둘러싼 작가의 구체적 불편을 설치물로 재현한 <아트 바이블>의 첫 여정은, 협의의 주관적 시공간인 가정에서 발생한 부조리한 개인사를 투영한 <식물들의 밀실>이 이어받는다. <식물들의 밀실>은 구체적 대상(가령 개와 식물)을 출연시켜 진술을 대리하려 든다. 다만 ‘고의로’ 모호한 서사를 취해 진술의 구체성을 포기하고 은유적 시각충격에 몰입한다. 그리고 이제 당도한 <세계의 끝>은 세계 전체 시스템의 부조리로 관심이 확장된 것이리라. 재현된 내용도 전작들만큼 소상하지 않다. 다만 능히 대처하기 힘든 기하학적 밀폐 공간과 정체 모를 검은 웅덩이의 추상성이 전달하려는 내용을 모두 삼켜버린다. 작가의 복잡다단한 진술은 단순 구조(도상) 하나로 수렴된다. 단지 미세한 편차로 반복되는 웅덩이, 소실점, 그리고 밀폐 공간은 연작 타이틀처럼 종말을 향해 치닫는 세상의 부조리를 구조물로 재현한 거거나, 혹은 정반대로 부조리한 세계를 끝장낼 방책으로 작가가 세운 구조물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게다. 선명한 작가 진술과 그것이 투영된 모호한 재현물. 그 둘은 커다란 구조 속에 일체가 되어 반복 재현된다. 세계의 구조적 부조리를 의심하는 장파는 미적 구조주의자가 되려한다.
- 반이정 (미술평론가)
작가 약력
학력
200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석사 수료
200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미학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11 세계의 끝, OCI미술관, 서울
2009 식물들의 밀실, 예술공간 HUT, 서울
단체전
2011 Emerging Artist 2011, MK2, 북경, 중국
2010 서교난장: 회화의 힘, KT&G 상상마당, 서울
Tipping Point, 관훈갤러리, 서울
ARTROAD77, 파주 헤이리
Stage Reality, Salon de H, 서울
가공할만한, 갤러리 소머리 국밥, 양평
장파 & 이연경_드로잉, 아트팩토리, 파주 헤이리
2009 서교난장 2009, television12, 서울
ARTROAD77, 파주 헤이리, 경기도
쾌락원칙, 문화일보갤러리
장파&창창, television12, 서울
2008 여섯번째 여름, 스톤앤워터, 안양
꿈꿀권리, 아트팩토리, 파주 헤이리
2006 오늘날 예술은 일상속에서 다만 개념적으로 짠하다, 스톤앤워터, 안양
수상
2010 2011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서울
레지던시
2011 C.O.L ART Residency, 베이징, 중국
이메일
jangp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