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10–18시
작가이름
이미정전시명
《위로는 셀프》기간
2013. 08. 16 - 09. 05장소
OCI미술관가치(價値)의 해체를 위한다양한 전술들
사회에서 ‘공공의 선’으로 함의하는 것들은 칭찬받고 격려된다. 공중에서 흩어지는 칭찬의 언어를 지나 유치원을 다니면서 스티커를 받고 초등학생이 되어 공책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고, 상장을 받으면서 칭찬은 구체화 되고 강화된다. 칭찬을 의미하는 ‘별 스티커’와 ‘참 잘했어요’ 도장은 역으로 맘대로 복도를 뛰어가던 아이, 글씨를 개발새발 쓰던 아이에게는 트라우마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것, 욕망을 표출한 순간 선생님의 격려가 가득 담긴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칭찬의 도구들은 눈앞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칭찬의 도구들은 사회를 공공선으로 이끄는 이미지이지만, 그 공공을 위하여 개인이 수행해야 할 임무나 억눌러야 할 억압의 표상이기도 한 것이다. 이미정이 다루는 이미지들은 ‘칭찬’과 결부되어 있다. 물론 한눈에 봐도 스마트한 이 작가가 결핍의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 터,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그토록 열망하고 순종해왔던 것들에 대한 강력한 반발 혹은 거부를 표상한다.
칭찬하는 명칭이나 대상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지만 황금색 봉황이 그려진 거대한 상장은 동네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을 때 서툴게 세워주던 가림막에 걸려 있다. 이력서에 붙은 사진에서는 얼굴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견고한 배경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얼마든지 교체되는 배경막으로 상장을 위치시킨다. 작가는 ‘든든한 배경’이라 생각하는 것이 실은 ‘평면적이고 연약한 구조’임을 노출시키고 있다. 상장의 물질적이며 구조적인 허약함을 노출시킴으로써 ‘수상(受賞)’이 개인의 사회적 욕망을 부추기지만 실은 인간적 욕망을 억압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상 받을 만한 일을 수행한 사실에 대한 물질적 증거인 ‘상장’의 허약한 실체에
촘스키(Noam Chomsky)는 인간이 사물을 보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방법에는 문화적 요인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인간이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 내리는 판단은 비록 의식한 것이 아닐지라도 전략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평가의 결과는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기는 기준이 된다. 정신에 구축한 도덕적 체계는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이렇게 새로운 상황에 적용되는 모든 판단의 토대가 된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살아가면서 나쁜 짓을 할 때조차 스스로 기분내키는 대로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기 어려운 것은 도덕적 가치의 기본 틀에 맞추기 위해 상황을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적 가치를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법과 다른 체계 안에서 인간의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규율은 도덕과 유관하며, 억압기제로 작용한다. 결국 상을 받을 만하고, 칭찬받아 마땅하고 모두가 지켜야 할 것들은 역으로 자아존중감을 해칠 수 있고, 자신을 억압할 수 있으며, 별반 쓸모없는 것들일 수 있다.
<자가수상을 위한 단상>이나 <자가수상을 위한 무대>는 구체적으로 사회가 규정한 ‘공공 선’을 개인적인 일에 위치시킴으로써 그 사회성을 무화시킨다. 동상이나 트로피를 올려놓는 대(base)를 재현한 <자가수상을 위한 단상>의 나무 좌대는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선 ‘네 번째 좌대’를 연상시킨다. 주변의 군주나 영웅상과는 달리 비어 있는 좌대에는 힘없는 구조물이 올려지기도 하고 지원한 일반인이 돌아가며 동상처럼 서기도 한다. 강인한 영웅주의의 자리에 위치한 존재들에 주목하는 이 좌대처럼 이미정의 좌대는 ‘아무 것도 아닌’ 개인을 위치시킨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국기를 향해 인사도 하고 국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볼 수도 있는 나무로 만든 ‘허접한’ 좌대는 ‘높이’를 통해 구분짓는 사회의 장소적 허구성을 폭로한다.
<자가수상을 위한 무대>는 둥근 나무의자의 뒷배경으로 상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무궁화 도상 좌우로 일상의 기물들이 입시도안집에서 볼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한 편화(stylization)로 제작되어 걸려 있다. 드릴, 망치 등 공구에서부터 화가들이 사용하는 파레트에 이르기까지, 사물들이 마치 컴퓨터 바탕의 이모티콘처럼 널려 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떠올리며 그것과 연관된 사물을 ‘클릭’하여 나무의자 위에 놓고 엔터를 치듯 획득하면 된다. 그 다양한 물건들에는 성인용품과 게임 아이템까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소유하고 싶어 하거나 직업을 의미하는 모든 것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를테면 공부를 잘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거나 좋은 기업체에 취업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조직의 선택을 의미한다. 합격자명단이 굳이 발표되는 것도 그러한 선택의 주도권이 조직에 있음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장의 한 벽면을 차지한 수많은 사물들은 아주 가볍게 커서만 옮기면 되는 컴퓨터 화면 속 세계 같지만 눈앞에 실재하며 사물을 만지게 한다. 누구라도 선택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는 그 무대는 입시미술을 경험한 사람에게 학교에 의해 선택되어진 개인이 아닌, 학교를 선택하는 개인으로서의 쾌감을 맛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자가수상을 위한 무대>는 작가의 이전 작인 <레드콤플렉스>와의 연결점을 보여준다. 나무의자 위에 사물을 선택하여 목에 걸거나 들고 선 인물의 광배가 되는 무궁화는 황금빛 찬란하다. 그런데 무궁화의 중심에 있는 술이 발기한 남근처럼 발칙해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주의와 연계하여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하는 대상과 금기시하는 성(性)적인 이미지와의 결합은 ‘공공의 선’이라 규정한 것이 얼마나 개인의 억압을 기반으로 하는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놀이적인 속성, 금기와 숭고함의 결합은 전통사회에서 가치를 부여하던 <문자도>나 <행실도>를 변형한 <구직을 위한 8덕(八德)>과 <백명의 소녀를 그린 그림>에서 구체화된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는 전통사회에서 나라를 존재케 하는 가장 주요한 덕목이며 도덕률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취업 전까지는 부모님께 딱 붙어 살 수밖에 없는 <효>, 서슬퍼런 귄력 앞에 무조건 쥐 죽은 듯 비굴한 굴복의 자세로 이루어진 <충>과 경쟁을 위해 우정도 버린 채 밟고 서거나, 대기업에의 취업을 소원으로 이루어진 ‘문자도’는 88올림픽으로 한창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졌을 때 태어난 1988년생 작가가, 88만원 세대라는 자각 아래 20대의 현실을 투영하였다는 사실에서 과거의 정형화한 도상으로부터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대한 비판적 도상을 획득하였다는 의미를 가진다.
소년들에게 바른 사회생활을 가르치는 ‘행실도’를 소녀들에게 금기시하는 것을 가르치는 도상으로 이용한 <백명의 소녀를 그린 그림>에서는 가치를 ‘전복(顚覆)’시키는 방식의 유쾌함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쾌락을 지향하고 낭비하는 삶,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자신의 삶을 사는 삶,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인 오르가즘을 획득하는 삶, 무모하고 과시적인 삶”을 권장하는 사회를 재구성하였다. “주체(법)와 지식의 대상(억압)에” 도전하고 해체하는 방식은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이 직시한 것처럼 침묵이나 비실존과는 다른 격렬한 전투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를 지나 현재적 아노미와 경제적 공황에 가까운 글로벌한 시대에, 변화하는 의식의 와중에서 전통적 가치와 서구적인 모럴 사이에 위치한 동아시아의 여성으로서 당착한 문제점들을 동아시아의 가치관을 묘사한 틀을 빌어 해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금기에의 도전은 만다라(mandala)라는 도상을 통해 합법적인 위치를 갖는 성적인 이미지를 강화함으로써 불편한 현실의 관계를 드러내는 <합일> 시리즈와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은 현대가 ‘불안의 시대’인 것은 그 어떤 견해와도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관여나 참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는 나아가 물고기는 물 밖에 나와야 물을 의식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오늘날 텔레비전과 신문지상의 뉴스가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사건이 등장할 때까지 반복되는 자기복제 기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 기계사회의 미디어에 대한 맥루한의 통찰은 우리 사회의 흐름을 조정하거나 진행하는 에너지에 대해 유용한 이해의 틀을 제공한다. 푸코(Michel Foucault)가 경계했던 사라지라는 선고, 침묵하라는 명령, 비실존을 긍정하라는 명령인 ‘억압’이 이러한 뉴스의 틀과 연계되어 이미지를 통해 확고해지는 것 또한 확인한다.
오랜 세월 이미지를 틀 지우는 것들에 대한 반발 혹은 상상력의 규제에 도전해온 미술가들의 힘은 자본주의 시대에 현저히 약화되었다. 물론 군주나 절대적인 권력의 주체가 해체된 현대사회에서 국적이나 물리적 실체가 없는 자본은 부정할 대상을 설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다. 이미정의 발칙하고, 도전적이며 순전히 놀이를 위한 놀이기구는 ‘공공의 선’과 먼 거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공공의 선을 위해 매우 유용한데, ‘가치’라는 이름으로 규제된 삶의 법칙들을 무화시키는 놀이의 존재를 우리에게 각인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인 이미지가 넘쳐남에도 주체 없는 이미지만 존재하며 여전히 ‘성’ 자체에 대해서는 금기를 갖고 있는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가 신장하고 자본을 지닌 엘리트가 사회적 책무를 잊고 자신의 욕망을 펼쳐나가던 서구 근대의 모습과 닮아 있다. 주체적 삶을 위하여 땅에서 벗어나 지식을 소유하였지만 노동에서 소외된 88만원 세대, 88년생의 삶은 연대(連帶)와 유대(紐帶)라는 대안을 통해 확립될 수 있음을 ‘8망(八亡)’의 도상이 되어버린 ‘구직을 위한 8덕(八德)’에서 본다. 이 젊은 작가의 발칙하고 거칠어 보이는 작품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세상은 보여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때문이다.
- 조은정 (미술평론가)
작가 약력
학력
2011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회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20 SANDWICH TIMES, 송은아트큐브
2018 The Gold Terrace, 아트딜라이트
2017 IF THERE IS NO WIND, ROW, 아트스페이스휴
2014 Pink Noise, 갤러리 쿤스트독
2013 위로는 셀프, OCI 미술관, 서울
2012 Red Complex, 갤러리 아트사간, 서울
단체전
2020 맞, 공간사일삼
따로-같이, 전태일기념관
Brave New Gaze: 시각, 시선, 그리고 시작, 아뜰리에아키
새일꾼 1948-2020, 일민미술관
2019 2019 PACK_모험! 더블크로스, 탈영역우정국
PERFORM 2019 : Linkin-out, 일민미술관
바깥으로 굽는 팔, 갤러리미술세계
2018 이솝유머, 벗이미술관
사라지지 않는 still there, still here, 문래예술공장
몸몸몸 mom mom mom, 인스턴트루프
IN_D_EX : 인덱스, 서울시립미술관 프로젝트 갤러리
2016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사다리, 상상마당
살찌는 전시, 공간291
2015 The Hours 그리고 만나다, 아트스페이스휴
납작한 저장소, 테이크아웃드로잉
어르신, 소녀, 뽀드득, 인스턴트루프
혼자사는 법, 커먼센터
2014 임대의 추억, 기와하우스
Sex + Guilty Pleasure, 아마도 예술공간
FORWARD BEAUTY, 암웨이미술관
2013 Korea tomorrow 2013, 예술의 전당.한가람 미술관, 서울
2012 홍제천씨의 현장관람기,홍은 예술 창작센터, 서울
2010 Show me the money, 갤러리 소소, 경기도
내일을 향해 쏴라3′, 대안공간 충정각, 서울
2009 Some like it Hot!, 대안공간 충정각, 서울
2008 Illhyun Travel Grant 2008, 일현미술관, 강원도
수상
2020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2019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2018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지원
2013 아르코 신진작가 워크숍, 아르코미술관
2012 2013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레지던시
2021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20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
2017 관두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 대만, 타이페이
홈페이지
이메일
emjelee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