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 작가이름

    이주리
  • 전시명

    《Lucid Dream》
  • 기간

    2013. 06. 05 - 06. 26
  • 장소

    OCI미술관

전시서문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이분법적 사회구조에 대한 성찰


 


이주리의 작품을 관류하는 기본 컨셉은 비합리적 세계, 다시 말해서 몽환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꿈을 꾸는 것과도 같은 부유하는 이미지들, 지극히 파편화된 그것들은 각기 분절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디론가 중심을 향해 이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일견 구획되어진, 따라서 영토화된 기존의 권위나 가치, 위치에 대한 반란처럼 읽힌다. 이처럼 기성의 것들에 대한 이주리의 ‘탈영토화’(들뢰즈의 잘 알려진 표현을 빌리면) 작업은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발현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주리의 작품을 현실을 떠난 비합리적 세계에 대한 묘사로 간주할 수 있는 비평적 근거이다.


 


그렇다면 이주리는 왜 이처럼 전복적인 작업을 수행해야만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상상의 세계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면 끊임없이 줄을 잇는 이미지의 사슬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의 작품 속에는 그것이 회화건, 드로잉이건, 설치작업이건 간에 홍수처럼 쏟아지는 이미지들이 담겨있다. 충혈된 눈알을 비롯하여 깃발, 목이 잘린 인체, 정충,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이 이루어내는 비논리적인 풍경이 바로 이주리가 그려내는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지배적인 느낌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반란이랄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은 과연 추한가? 아름다움에 대한 반대의 미적 가치로서의 추는 현대미술의 지배적인 경향이랄 수 있는데, 이주리 또한 이러한 트렌드에 편승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신세대 작가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자아의 탐닉을 통한 내러티브적 경향은 분명 기존의 전통적인 미의 개념에 접근하고 있다기보다는 이에 대한 거부가 이루어내는 일종의 가역적 풍경이랄 수 있다. 그것은 일견 질서가 잡혀있고 잘 짜인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강고한 현실에 대한 반역처럼 보인다. 기존의 주름에 대한 변혁의 의지, 그러나 현실적인 수행의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파고드는 초현실의 세계가 바로 신세대 작가들이 그려내는 심리적 내러티브인 것이다. 큰 범주에서 볼 때 이주리가 그려내는 세계 역시 여기에서 멀리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주리의 작품은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에 대한 지속적인관심을 통해 자신의 서사를 매우 독자적인 것으로 채색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성(城)의 이미지는 수성(守城)과 공성(攻城)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통해 나타난다. 그의 작품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중심을 향한 이미지들의 이동은 바로 이러한 도식과 관련이 깊다. 무엇을 향한 이동 즉, 현상학적 용어를 빌면 지향성의 개념이 이러한 이동을 추동하는 요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중심에는 그의 몸에 대한 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작업은 결국 몸 담론인 셈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이야기하는 애브젝션, 즉 천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일견 그의 작품을 추하고 때로는 엽기적인 것으로 인상짓게 하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 빈번히 등장하는 목이 잘린 인체들, 중심을 향해 몰려드는 정충들, 충혈된 눈알들은 착취와 억압, 고문, 감금, 사형, 강간, 살해, 약탈 등 비정한 인간사회의 상징으로 도입된다. 이른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이분법적 도식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스키마는 흑기(黑旗)와 백기(白旗)의 도입을 통해 재차 상징화되기에 이른다. 그는 “세상이 비정하다”고 말한다. 이주리가 바라보는 이러한 세계관은 비정함이 극단에 이른 상태, 즉 엽기적 장면을 통해 구체화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작가 이주리의 탁월한 상상력의 세계가 버티고 있다. 이처럼 잔혹하고 때로는 엽기적이기조차 한 초현실의 세계는 거대한 생선의 살을 바르는 장치를 비롯하여 많은 눈알들을 처리하는 작은 인간들, 해안에 몰려든 수많은 배 등으로 묘사되는데 정작 작가는 그러한 이미지들이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예술의 신비가 아닐까? 이주리의 탁월한 상상력은 이미지의 내러티브를 통해 견고한 피안의 세계에 정박한다. 그의 상상은 수성과 공성이라는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스키마를 주제로 설정한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기계가 많이 등장한다. 공사장에 관심이 많은 그는 공사장에 널려있는 기계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는 인체의 부분을 기계로 치환한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눈알이 시한폭탄이나 포탄을 닮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목이 잘린 인간들은 어디를 향해 유랑의 발길을 옮기고 있는가? 이 부유하는 풍경은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풍경이 아니라 현실의 복제판이다. 그의 그림은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읽힌다. 요즘 유행하는 용어를 빌리면 갑과 을의 사회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인간성의 상실, 기계에 대한 인간들의 절대적인 신봉, 컴퓨터화된 정보사회에 대한 우려, 스펙타클 사회(기 드보르)에 대한 경종의 의미가 그의 작품 속에서 파편화된, 따라서 길을 잃은 미아의 상태로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이주리의 작품은 우리에게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사회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다. 소문만 무성하고 팩트는 없는 사건, 조작된 사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가상의 세계(시뮬라크라), SNS와 언론에 의해 진실의 전복이 가능한, 한 마디로 위조된 세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담겨 있다. 그것은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하면 염려(Sorge)에 가깝다. 현대문명에 대한 깊은 우려가 기계에 의해 몸이 포획된 상태로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공격적인 모습으로 화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이주리의 회화 작품에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등장하는 드로잉과는 달리 마치 번개를 연상시키는 불규칙한 선들이 등장한다. 붉거나 푸른 그 선들은 그 밑에 가라앉은 사건을 뒤덮고 있다. 그것은 마치 탈영토화를 통한 영토의 재편처럼 읽혀진다. 새로운 땅에 대한 동경과 기존 가치나 질서에 대한 전복, 그것이야말로 작가인 이주리가 그리는 새로운 이상향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전시회에 설치작업으로 제시하게 될 종이배의 존재는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과연 그 배의 정박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 윤진섭(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


 


 


 


 


 


작가 약력


 


학력


2011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졸업


2009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


 


개인전


2013 Lucid Dream, OCI미술관, 서울


2012 다크판타지,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서울


 


단체전


2013 PAUSE, 신한갤러리, 서울


여덟 개의 창, OCI미술관, 서울


2012 코쿤 인사이드, 스페이스K, 과천


팔색거사, OCI미술관, 서울


2011 I will survive,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AC=교류, 성균갤러리, 서울


2010 열사흗날 밤-화화 일별, 한국예술종합학교 Karts gallery, 서울


2009 게이사이 아트페스티벌, 도쿄 빅사이트, 일본


동방의 요괴들, 두산아트센터 갤러리, 서울


 


수상


2012 2013 OCI YOUNG CREATIVES, OCI미술관


2008 동방의 요괴들 선정작가


 


레지던시


2013 인천아트플랫폼


2011-12 OCI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이메일


s_anysi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