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 작가이름

    김채린
  • 전시명

    《따뜻한 여름의 둥근 모서리》
  • 기간

    2019. 07. 25 - 08. 17
  • 장소

    OCI미술관

전시서문

따뜻한 여름의 둥근 모서리


 


 


서로를 쫓던 시곗바늘이 만나는 시간 12시는 한낮이거나 한밤중일 수 있듯이 기준의 위치는 다양하다. 김채린은 조각의 기념비적 역할에서 벗어나 형태를 허물고 대단치 않은 것을 접목해 새로운 감각을 이끌어내거나, 살결 같은 재질을 둥글게 매만져 촉감의 흔적을 기억한다.


보편에 근저한 기준들을 살짝 바꿔본다. 전시장의 새하얀 벽과 넓은 바닥이 아닌, 건조물의 손잡이나 바닥 몰딩, 벽 모서리 등 눈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에 색을 입히고 결을 만든다. 공간과의 만남은 텅 빈 중앙이 아닌, 기능의 역할에 충실한 외곽에서 시작된다. 그 맥락은 기성품과 작품의 조합으로도 이어진다. 바늘로 콕 찍은 듯 작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보다 손때와 추억이 묻은 물건의 흐릿함에 마음이 가듯, 특별할 것 없이 마주하던 소품들은 작가의 작품으로 스며들어 시간과 이야기를 함께 한다.


작가는 표준과 평균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기준들을 갈아내서 헤아릴 범위를 넓히고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며 무수한 갈래의 길을 만든다. 촉각적 심상, 접촉에 의한 마음의 형상을 작업에 새기며 형태를 시각으로 읽기 보다 신체의 감각으로 그 기운을 깨닫게끔 유도한다.


 


 


- 이영지 (OCI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또 다른 에탕 도네 (Étant donnés), 주어진 것으로부터


 


 


“네(명의) 남자는 입으로 말하는 단어들을 대신하는 공통의 몸짓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의 어휘에는 고유의 구조와 문법이 있는데, 대부분은 동작을 하는 시간차와 관련이 있다. 그들의 몸짓 신호는 손과 얼굴, 그리고 몸으로 이루어진다. 손과 얼굴, 몸이 소리를 내고 그 소리와 관련된 두 기관인 혀와 귀를 대체한다. 어디서든 대화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두 기관이 똑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전체 차량 안에서, 아니 전체 기차 안에서 그들의 대화에 비견할 만한 대화는 없다.”


– 존 버거


 


문득 누구나의 첫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처음 엄마 품에 안겼던 그 따뜻한 기억, 여름 밤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면서 뺨을 스친 비릿한 공기 냄새와 질감, 비에 흠뻑 젖은 내 몸을 안아줬던 모든 사람들의 선한 마음까지. 이러한 감각적 경험들은 언어의 바깥에서 서성거리는 것들이기에 몸의 경험이란 대개 무의식으로 저장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언어로 환원되지 않은 감각의 기억은 불현 듯 어떤 기시감으로 부활하곤 하는데, 낯설지만 않은 느낌들을 통해 어딘가에 숨어있는 기억들이 어렴풋이 다가오는 기분은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나는 김채린의 작업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물질을 만지작거리던 그 조각적 순간을 떠올렸다.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기보다는 손으로 느껴지는 감촉들을 따라가던 기억이다. 허버트 리드는 저서 『조각이란 무엇인가』에서 선천성 시각장애인이 만든 인물상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시각을 통해서 우리는 상을 얻는데,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극히 부분적인 이미지를 얻을 뿐이다. 왜냐하면 많은 거울이 있다 해도 우리의 시각은 한 번에 한 방향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만족스러운 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촉각을 통해 우리의 몸을 만져도 보고, 우리 몸속에 내재하고 있는 신체적인 감각, 특히 근육의 긴장감·운동감·피로감·중압감·중력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1) 리드는 이 글을 통해서 시각성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미술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채린의 조각은 형태로나 기능으로나 불완전한 상태로 제시된다. 그의 조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조각 문화의 관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유를 추측해보면 그는 무엇을 보여주려 하기 보다는 뭔가를 느끼게 하려는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쉽게 해석해 보자면, 그의 작업은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질 때 비로소 더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손의 감각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의 모든 작업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형식뿐만 아니라 장르에 대한 경계도 흐릿하다. 테이블 혹은 의자, 팔꿈치 패드, 몸을 기대고 쉴 수 있는 어떤 것, 일상적인 것을 쌓아올려 미학적 존재를 과시하는 일탈과 같은 일시적 조각까지를 포함한다. 유일한 공통분모는 바로 촉각이다. “Single grip”(2006)이란 작업은 비정형적인 모양의 실리콘 덩어리를 손으로 쥔 채 지하철의 손잡이 등을 잡고 이동하는 일종의 조각적 퍼포먼스이다. 작업은 신체의 외형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행위의 흔적/결과를 제시할 뿐이다. “그..이후의 시간”(2015)은 손뜨개로 만든 코스터를 쌓아올린 작업으로 공예적인 것과 조각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스툴 시리즈(2015)는 작품 감상용 의자로 기능을 강조하지만 개별 작품에 붙은 표제는 남매, 소년과 같은 대상을 지시함으로써 사용자와 사물의 관계를 보다 밀착되도록 유도한다. “당신의 무릎 위에서 떠올린 몇 가지 상상”(2015-2016)은 신체와 신체의 만남이 주는 낭만적인 포근함을 상상하게 한다. 살펴본 것처럼 김채린에게 조각이란 재현도 웅장한 기념비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는 손을 만지고 체온을 주고받으면서 받은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언어 바깥의 정서(atmosphere)를 물화한다. 그것은 체험을 제시하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시대 조각에서 조각적인 것과 산업적인 것 또는 공예적 요소는 점차 경계가 모호해지는데,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장르의 혼합으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의 경계 사이가 중첩되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변화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뒤샹의 레디메이드처럼 일상적인 것이 조각적인 것이 되고 조각적인 것이 반대의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의미는 운명이 개인의 존재보다 앞섰던 과거에서 벗어나 주어진 것 너머를 갈망할 수 있음의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뒤샹의 “에탕 도네”는 “주어진 것”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막상 구멍으로 들여다 본 장면은 물질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미지로만 감상해야만 한다. 한계는 욕망을 더 부풀리는 기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시를 가로질러 공급되는 가스가 준 혜택, 이 주어진 것들은 과연 생존을 위한 물질인가, 아니면 관능과 환희를 위한 생의 에너지인가 생각해보자.


 


이번 전시 는 작업의 배치와 공간의 구조의 관계를 주목한다. 예컨대 미니멀리즘 조각이 존재의 장소인 형상을 버리고 스스로 공간이 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면, 김채린은 전시 공간의 모서리, 걸레받이, 핸드레일 등과 같은 곳에 작업을 배치하여 시선을 분산시켜 주변과 중심의 논리를 흐트러트리고자 한다. W. J. T. 미첼은 현대 조각을 두고 조각 자체보다는 늘 그것이 놓인 자리와 장소가 쟁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장소나 자리, 위치에 대한 질문은 늘 조각의 핵심적 쟁점이 되어 왔다. 회화와 달리 조각은 통상적으로 그것을 담는 그림틀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회화보다 훨씬 더 장소를 정하는 문제에 민감하다.(중략) 조각은 공간을 차지하고, 장소를 점유하며, 그 안에서 움직이고, 그 장소에 끼어들거나 그 장소를 바꾼다.”2) 조각에 있어서 제외될 수 없는 게 바로 조각이 서있는 자리, 그 장소와의 관계다. 따라서 김채린이 선택한 자리, 장소는 작가의 의지가 외곽성(periphery)에 있음을 지시한다. 특히 이번에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막상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흔한 일상용품들을 주목하였다. 고무줄, 스펀지, 공, 수세미 등 하찮은 소모품 등을 만지고 놀면서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형태를 찾아간다.


 


그의 작업에서 에바 헤세(Eva Hesse)가 연상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것 같다. 헤세의 조각은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일만큼 하찮은 재료들로 이뤄졌다.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의 영향권에서 헤세의 조각은 조각적인 것에 대한 질문이자 반항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투박하게 재단된 유리섬유 판을 돌돌 말아 세우는 행위, 그물망에 공처럼 보이는 덩어리를 집어넣어 툭 매달아 놓은 작업 등은 오랜 조각의 관습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렸다. 재현을 벗어나 실존의 대상을 찾아가는 과정은 외형이 아닌 내면의 무엇인가였고, 그런 고민은 자연의 힘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조각의 반대편을 사유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헤세의 조각은 이상한 것(eccentric)이라 불리기도 했다. 김채린에게도 헤세의 즉흥적이고 반조각가적인 면모가 충분하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따스한 빛, 포근한 온기가 있다. 아마도 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바로 촉각과 온기다. 손으로 사물을 만지고 질료를 붙이거나 그 과정에서 배출된 찌꺼기들도 이후에 작업으로 환원되어 재등장하는 경우는 최근 들어 더 잦아지는 것 같이 보인다. 나는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김채린이 조각적 행위를 통해서 이미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주어진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사물들/이름 없는 것들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빛과 불은 생명의 근원이니까.


 


 


 


1)허버트 리드, 『조각이란 무엇인가』, 열화당, 2001, 63-64쪽

2)W. J. T. 미첼,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_이미지의 삶과 사랑』, 그린비, 2010, 367-368쪽


 

 

 


- 정현(미술비평, 인하대)


 


 


 


 


작가 약력


 

학력


홍익대학교 조소과 석사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


 


개인전


2019 《따뜻한 여름의 둥근 모서리》, OCI미술관, 서울

2018 《열 한가지 조각》, 김종영미술관, 서울

2015 《무소속의 시간들》, 공공연희스페이스, 서울


프로젝트 개인전 《collaboration with movidick》


《MELTINGS》, Elephant art, 서울


 


단체전


2021 《우리들의정원, 소다미술관》, 경기, 한국


《움켜쥔 흐지부지》, 갤러리밈, 서울, 한국


2020 《두 귀 사이에는 얼굴이 있다》, 문화비축기지, 서울, 한국


《경기 시각예술 성과발표전 생생화화: 이연연상》,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파주, 한국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작가전: 작가노트》, 경기창작센터, 안산, 한국


《창원조각비엔날레, 비조각: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성산아트홀, 창원, 한국


《눈 깜짝할 새》, 일우스페이스, 서울, 한국


2019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입주작가전: 회귀본능》, 경기창작센터, 안산, 한국


《미술이 살고 있는 그 집》, 송좡당대예술문헌관, 북경, 중국


《ACADEMY》, 갤러리인사아트, 서울


《kim & kim》, 아무랩, 서울


2017 《신인작가지원전》, 의정부예술의전당, 경기도


《more & more》, 신미술관, 청주


2016 《STONE EDGE》, 스톤시티 갤러리 S, 이천


《생각하는 손》, 갤러리 H, 서울


2015 《청계추계체육대회》, 세운청계상가, 서울


《How to breathe-서울시립미술관 시민큐레이터 기획전시》, urbanplay, 서울


2014 《산발적 동요2》, ONE AND J. GALLERY, 서울


《산발적 동요》, salon de H, 서울


 


수상/선정


2021  퍼블릭아트뉴히어로선정

2020 예술창작지원 시각예술분야 (유망), 경기문화재단


청년예술가지원 다원예술분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혜민 작가와 공동기획)


비대면 예술창작활동 지원, 울산문화재단 (서혜민 작가와 공동기획)


2020 코로나19 긴급예술지원 예술인과 와로와로, 안산문화재단

2019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

2018 2019 OCI YOUNG CREATIVES 선정


창작지원작가 선정, 김종영미술관, 서울


2017 신진작가지원전 선정, 의정부 예술의 전당, 경기도


신인작가지원전 선정, 신미술관, 청주


2016 대한민국 미술대상전 공예부문 특선


수로요 도예 레지던시 입주작가


2014 경남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작가


 


레지던시

2019-21 경기창작센터 기획레지던시 입주작가(팀), 경기도

2016 수로요 도예 레지던시 입주작가, 경남고성

2014 경남예술창작센터 5기 입주작가, 경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