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 작가이름

    기민정
  • 전시명

    《종이를 세우고 돌을 감으면 가루가 흐르고 천이,》
  • 기간

    2019. 07. 25 - 08. 17
  • 장소

    OCI미술관

전시서문

종이를 세우고 돌을 감으면 가루가 흐르고 천이,


 


 


읽기를 미뤄왔던 책, 어쩌다 접한 영상, 바다 건너 먼 곳의 뉴스, 이렇게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기민정의 작업은 시작된다. 열기구 조종사가 된 화가의 소식도 그 중 하나였다.


열기구의 비행 시각은 보통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다. 태양이 낮게 떠있는 시간, 더운 공기가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가 그 빈자리를 채우려 주변에서 몰려드는 때의 훈풍을 이용해 지표면으로부터 떠오른다. 너무 높지도 너무 낮지도 않은 위치에서, 짐작할 수 없는 먼 곳까지 보기 보다는 하늘을 날며 땅의 소리를 듣고 시선이 닿는 곳을 오롯이 품는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작품과 단편소설로 정성껏 매만져 전시장에 옮겼다. 나지막이 열기구를 타고 관조하는 풍경, 그 안에 종이를 뭉쳐 세우고 석고를 떠서 감듯이 움켜쥐어 보고 주변에 검은 가루를 흘리고 천을 내려 바람의 모양을 짐작해본다. 말라있던 붓이 물과 색을 머금고 봉긋하게 피어오른 모습은 따뜻한 공기에 보기 좋게 부풀어 오른 열기구와 닮아서 혹여 멀리 날아가 버릴까 먹으로 지그시 눌러 놓았다.


그렇게 전시장에 작가의 작업실이 스며들었다. 한 번밖에 없고 두 번 다시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을 이 여름은 바스락거리는 종이 더미 위에 올라 서서히 미끄러지거나, 해가 드는 창문에 매달려 투명하게 흔들린다.


 


 


- 이영지 (OCI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어느 소설가에 대한 그림에 대한 소설


 


 


“라고 피터 모르간은 쓴다.”1)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 라고 이 글은 처음 두 문장을 뗀다. 블록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럭저럭 소음이 잦아든 서울의 어느 골목길에 있는 작업실에서 기민정은 보스톤에 사는 화가에서 아프리카 열기구 조종사로 변신한 인물의 유투브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가 아름다운 걸 보고 무언가 그려야 한다는 강박을 가졌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순간 나는 대화가 무르익기 전에 방 안 곳곳을 두리번거리다 눈에 박혔던 몇 권의 책 제목과 이야기를 되새겼다. 그리고 작가의 어깨 너머로 분홍색과 푸른색의 선과 점이 얽히고 여러 장의 한지가 이불처럼 구깃구깃 얽혀 바스락거리는 더미를 봤다. 망친 그림을 쌓아놓은 걸까. 아직 작업 중인 듯, 벽이나 탁자 위에 올려놓은 한지, 잔금이나 구김살이 가득한 종이 귀퉁이가 초여름의 더위를 식히는 바깥바람에 팔랑이는 소리는 그림 더미와 종이 낱장의 처지를 구분하기는커녕, 종이의 여러 가지 표정을 보여줬다.


 


종이는 약하다. 기민정의 작업실에서, 벽면에 반듯하게 붙이지 않고 들보에 매달거나 창 문 앞에 간격을 두고 붙인 한지는 좌우 모퉁이가 해져 덜렁거린다. 쉽게 바스러지는, 사라지기 쉬운, 보호 본능을 야기하는, 물질 또는 비물질적인 것. 회화의 물리적 지지체인 평평한 화면과 프레임이 연약한 한지 재료로 번역되며, 번역되는 데 실패하며, 회화의 물리적인 조건을 다시 보도록 한다. 곡면을 만들거나 여러 개의 사각형을 겹치는 식으로 회화 프레임의 무한한 변형 및 확장 가능성을 추구하는 것일까. 아니, 작가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프레임을 디자인하는 대신 그것을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레임으로부터 벗어난 회화는 한 장의 종이다. 종이는 (회화보다) 가볍다. 책의 무거운 겉표지가 속지를 감싸 누르듯이, 작가는 깨진 유리 조각의 무게로 종이의 아랫자락을 눌렀다. 여전히 종이를 앞에 두고 있건만, 보여주고 싶은 건 평평한 이미지로서의 그림이 아니다. 무엇이 보일 지는 제어할 수 없다. 그림을 그림 아닌 것으로 다루는 태도를 보일 뿐이다.


 


서양화의 타자로서 부정적으로 정체성을 구축해온 동양화 또는 한국화는 캔버스 유화의 밀도나 강도에 비견되는 장지 재료와 화면을 안정적으로 채우는 그림의 관습을 만들었다. 이에 반해 작가는 햇빛을 받으면 투명하게 빛나는 하얗고 얇은 한지를 택했다. 그의 작품에서 알록달록한 묽은 물감은 화면 위를 빠르게 스치며 흩뿌려지고, 무겁고 건조한 먹은 빈 곳을 채우듯 종이를 누른다. 먹은 색과 다른 속도와 리듬으로 움직이며 때로는 색의 앞에서 폭죽처럼 터진다. 속도감 있는 엷은 선이 성기게 그어진 화면에서 색은 종종 바깥으로 날아오를 듯이 가벼워보인다. 그에 비하면 먹은 무게를 머금은 안료라 종이를 벽이나 바닥에 부착시키는 문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흩뿌리는 힘과 누르는 힘. 종이를 사이에 두고 위로 날아오르는 힘과 뒷면의 받침에 고정시키는 힘.


 


기민정의 작업실에서 다른 물건과 엉켜 아무렇게나 구겨지고 널브러진 종이 뭉치는 어쩌면 이런 반대방향의 장력이 작용하여 빚어진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회화 평면의 수평적 움직임을 넘어 3차원의 공간으로 나온 입체적인 사물은 회화의 해방을 선언하는가. 최근 수십 년 미술관 전시에서 점차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설치 미술은 회화 매체도 공간적 설치의 맥락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프레임에서 벗어난 회화의 유동적인 신체는 설치 재료로서의 변화무쌍한 가능성을 보여주는가. 기민정의 종이는 더 이상 화면의 내적 구조에 관심을 한정하지 않고, 그것이 놓이는 공간의 건축적인 요소에 반응하여 새롭게 구축될 조각이나 설치의 재료로 변모하는 듯하다. 그러나 다른 건축적 회화 설치 작업과 구분되는 점은, 작가가 작품의 효과적인 디스플레이를 위한 공간적 설치 자체보다, 거의 매일같이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예상치 못하게 어그러지며 한없이 쌓이는 시간성을 중요하게 의식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 작가가 구현하는 풍경은 작업실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 그의 설치는 전시장의 건축적 요소보다 그림을 다루는 태도에서 비롯된 공간의 사용감이 변형된 재현이라는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나팔수들이 진실!진실!진실!하고 외치는 동안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그가 여자였다는 사실을”2)


 


아름다운 풍경이나 사랑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예술을 대학에서 전공으로서 교육받는다는 매우 일반화되었지만 여전히 어색한 현실과 관계가 있을까. 짐작해 볼뿐,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그림을 보고나서 이 글을 쓰는 때의 강박을 의식한다. 결국 알 수 있는 건 합리적인 동기나 역사적인 기원 따위가 아니다. 그저 예술가의 유희와 강박이 한 쌍이라고만 말해두자. 기민정은 지난 몇 년 자신의 작업을 돌아보며 색감과 모노톤 사이를 번갈아 탐색하는 성향을 발견하고 두 가지를 ‘양가성’으로 인식한다.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번갈아 나타나며 전혀 다른 작품의 양상을 드러낸 것 같다는 자가 분석. 작년(2018)에는 그림 안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자아가 합쳐진 것 같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이렇게 그림 그리는 사람의 자아의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성향을 의식화한다.


 


우리가 자아의 이질성과 혼종성을 자각하게 되는 계기는 무엇인가? 그것이 자연스러운 다양한 내적 성질 중 두어 가지가 아니라 서로 모순되고 반대된다는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분명 한 가지 대상을 견고하게 규정하면 다른 것과의 차이가 강조된다. 이때 기준이 되는 자율적 주체와 달리 타자적 주체는 이질적이고 혼종적일 수밖에 없다. 그 밖의 것들을 떠맡은 타자는 규준의 모방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욕구와 함께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분열을 경험한다. 현대 서양 회화에 대한 모더니즘 미술의 강력한 정의가 그것의 반대 항으로서 동양화나 한국화라는 유령을 낳은 것처럼. 그런데 이질적인 것의 수용이 자율적 주체에게 화해나 확장의 의미를 가지는 데 반해, 타자적 주체에게는 모순이자 갈등을 내포한 파열적인 수용이 되는 게 아닐까.


 


작가의 서가에서 빼낸 두 권의 책은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제공해준다. 기민정은 문학, 특히 다분화된 자아에 관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작업 또는 자신과 이야기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작업적 실험에 동력을 얻는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로 액자 구성으로 시작하는 『부영사』와 버지니아 울프의 허구적 전기 『올랜도』는 모두 상반되는 성향의 두 사람이 공존하는 서사를 지닌다. 전자에서 피터 모르간이라는 인물이 쓰는 걸인 소녀의 이야기와 그가 속한 대사관이라는 분리된 두 세계의 이야기는 인도차이나라는 타자화된 대상을 두고 파열적으로 접촉한다. 후자에서 주인공 올랜도는 이야기 중반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변한다. 올랜도의 성전환을 묘사하는 우화적 서술에서 여성의 전통적인 덕목인 순결, 정절, 겸손이 쫓겨나고 진실의 나팔에 깨어나도록 한 장면은 ‘여성’을 비남성이 아니라 양성성의 화신으로 만든다.


 


두 소설에서 이질성은 등장인물의 성적이고 정치적인 설정뿐 아니라 ‘쓰는 주체’의 설정에서도 감지된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속한 세계와 관계를 맺는 소설가 피터 모르간과 시인 올랜도, 그리고 그들에 관한 소설. 즉, 삶에 관한 글쓰기와,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라는 이중 구조가 존재한다. 기민정은 ‘올랜도가 되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떨까’ 상상하며 지난 작업을 했다고 말했지만, 얼마 전부터 직접 글쓰기를 시도한 이래로는 버지니아 울프 또는 허구적 인물인 올랜도가 버지니아 울프와 만난 시점을 취하게 된 게 아닐까. 라며 글쓰기를 멈춘다.


 


 


 


1)마르그리트 뒤라스, 『부영사』, 1966 (장소미 옮김, 그 책, 2013)

2)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1928 (박희진 옮김, 솔, 2019)

 

 


- 김정현(미술비평가)


 


 


 


 


작가 약력


 

plz.any.question@gmail.com

 

학력


2016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박사 수료

201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석사 졸업

2009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 졸업


 


개인전

2021 불의 습기, 송은아트스페이스, 서울

2019 종이를 세우고 돌을 감으면 가루가 흐르고 천이, OCI미술관, 서울

2018 돌아와보니 이상한 곳이었다, 송은아트큐브, 서울

2017 그 시절은 지나가고 거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갤러리 그리다, 서울

2015 사랑의 정치,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단체전


2019 바람이 부는 모양, 스페이스 소, 서울

2019 Summer Love, 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6 무진기행, 금호미술관, 서울

2016 수묵미학, (재)한원미술관, 서울

2012 기억의 정치, 자하미술관, 서울


 


수상/선정


2019 2019 OCI YOUNG CREATIVES 선정

2018 토지문화재단 예술인 창작실 입주 작가

2015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9기 장기 입주 작가

2010 쿤스트독 라이프치히 레지던시(KLR) 참여, 라이프치히, 독일

 


레지던시

2021 송은 아티스트스튜디오, 서울

2015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1 쿤스트독 라이프치히 레지던시,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