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 작가이름

    조유정
  • 전시명

    《영원한 경이》
  • 기간

    2026. 04. 17 - 05. 30
  • 장소

    OCI미술관

전시서문

영원한 경이


물과 함께 부유하던 안료 입자들이 서서히 화면 위에 안착한다. 물이 증발한 자리에서 선명해진 물감의 흔적은 층을 이루며 포개지고, 얇게 스민 결은 서로를 스치며 미묘한 차이를 남긴다. 눌린 자국은 사라진 순간의 자리를 드러내고, 으스러진 존재는 그대로 박제된다.

 

조유정은 색의 물질성과 비물질성을 탐구한다. 안료가 품어온 시간은 켜켜이 쌓이고, 그 축적이 빚어낸 색채들은 격자의 구조 속에 질서 있게 배열된다. 수납장 속에는 작가 미상의 오래된 그림, 직접 키운 장미, 원물질 그대로의 광석이 나란히 놓이고, 색이 지닌 역사와 가치는 위계 없이 공존한다. 그렇게 쌓인 색들은 모두를 위한 하나의 거대한 컬러 차트이자 색의 아카이브로 남는다.

 

순간이되 영원하고, 사라지되 남는다. 증발과 중첩이 만들어낸 색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물질이 품은 찰나의 경이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 감각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영원의 영역으로 스며든다.


–  백소현(OCI미술관 큐레이터)




색의 컨테이너

 

무엇이 회화를 회화이게 하는가를 묻는다면, 조유정은 그 답을 일단 이라는 단 하나의 개념에서 찾을 것이다. 그에게 색은 회화를 성립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자, 회화적 탐구 욕망을 발동시키는 최소 단위의 자극이다. 나무나 알루미늄의 지지체, 천으로 된 캔버스, 사이징을 위한 풀, 안료와 미디엄이 결합된 물감, 점과 선, 원근과 평면성, 그리고 화가라는 존재와 그가 보내는 시간까지. 이러한 조건들 가운데 색은 조유정이 화면을 하나의 구조로 묶고, 연속적인 세계를 구획 가능한 단위로 전환하며, 회화를 일종의 컨테이너(container)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기제다. 색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이러한 작업 속에서 우리는 회화가 회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만으로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려는 한 가지 집요한 공상을 목격하게 된다.


조유정은 완결된 색의 체계에 매료된다. 색의 이름은 곧 그의 작품 제목 일부이자 분류 체계이며 그가 탐구하려는 종류다. 이번 전시 영원한 경이에서 다루는 빨강, 파랑, 노랑, 주황, 초록, 분홍, 검정은 약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근대 색채학이 정리해 온 목록과 맞닿아 있다. 이는 아이작 뉴턴의 7색 스펙트럼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동시에, 괴테가 고안한 지각 중심의 색채론, 요하네스 이텐의 12색상환, 19세기 이후 안료와 염료 산업이 구축한 색의 체계와 관련된다. 즉 그는 분류 불가능한 주관적 세계가 아닌, 과학적, 지각적, 산업적으로 역사화되고 체계화된 색의 시스템을 참조 삼아 회화를 출발한다.


한편, 작품 제목에 2,200, 915, 750개 등으로 나열하고 표기하는 수량은 완결된 체계 속 큰 집합으로서 개념적 색 하나를 나타내기 위해 그가 찾고 사용한 세부 색의 양이다. 이는 그가 지금 회화를 위해 구하거나 만들 수 있는 안료의 최대치이며, 체계가 허용하는 범위를 실험하는 한계값이다. 여기서 허용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제는 그의 작업 전반을 맴돈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기원부터 동시대까지 발굴되고 발표된 이론과 논증을 토대로 확인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이다. 어린 시절, 그는 그에게 쥐어진 12개 색연필이 충분한가라는 의심쩍은 질문과 함께, 범위의 확장성에 대한 궁금증을 품었다. 그것은 자신의 주체적 행위 바깥에서 내부의 행위 범위를 제어하는, 말 그대로 체계라는 외부 조건이 지닌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이 글의 말미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의 작업이 단순한 취향의 열거가 아니라 회화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근거로 작동한다.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운반하는 매개로서 회화라는 정의 말이다.


컬러 차트수납장으로 대표되는 현재 그의 작업은 회화에 관한 관심이 끝없이 소거되어 마침내 닿아 온 색을 향한 욕망을 구체화한다. 그가 그려 낸 화면은 언뜻 전면균질한 올오버(all over) 페인팅처럼 느껴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종한 도상과 형상들, 사각형으로 쪼개고 채워 분기시킨 여러 가지 색이 드러난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예를 들어 빨강이나 파랑이라는 단어로 통칭되는 수십 종의 안료들을 개별적인 실체로 제시하고 배열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로 크래머, 쉬민케, 내추럴 피그먼츠, 로버슨 앤 코, 가일전통안료에서 튜브형 물감을 구매하거나 안료를 구입해 바인더와 직접 결합하여 사용한다. 이 브랜드들은 색의 물질적 기원을 중시하며, 안료의 상세한 출처와 성분 표기를 통해 그 근원을 발굴하는 곳이다. 이처럼 재료를 의식적으로 선별하는 행위는, 도식화된 표나 보관소 형식의 시스템 속에서 각 색이 고유한 물질적 계보를 지닌 독립적 개체로서 제자리를 찾게 하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것은 그의 회화가 지금까지 모두 수채로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회화를 통해 특정 색과 연관되거나 연상작용으로 소환한 것, 또는 상징이 분명한 형상을 이들을 표상하는 색과 관계적으로 일치시키려 한다는 목적에서 기인한다. 일례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1887)를 번안한 작업 해바라기(2026)는 유화로 그려진 고흐의 그림을 참고하지만, 기름 섞인 요철이 강조된 질감보다는 노랑 자체만을 참조하는 것이므로 물성에서의 모방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방안으로 매끄러운 성질의 수채가 적합해진다. 그러므로 그가 칠하는 색들은 소위 화가의 역량에 포함되는 재현의 기술이나 조화로운 구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색을 기술적으로, 구성적으로 잘 사용(use)하는 대신, 색 특유의 성질을 잘 전달하는(deliver) 방법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 역시, 앞서 짚었듯 그의 작업이 회화적 기술 이전에 색의 체계에 부여된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탐구와 증명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일 테다.


컬러 차트연작은 그가 수 년 전부터 이어 온 대표작으로, 색에 가진 관심을 격자로 도식화해 강조한다. 수십 개의 물감을 가로, 세로로 한 줄씩 그어 각 사각형 칸마다 겹쳐 발색한 화면은, 회화에서 화가의 능력으로 일컬어진 조화나 미화의 목적이 아닌, 하나의 체계로 묶인 색의 범위를 가능한 끝까지 밀어 붙여 확인해 보려는 시도다. 2200 주황(2026)를 보자. 50개의 빨강 안료와 44개의 노랑 안료가 겹쳐 2,200개의 주황이 생성되어 있다. 화면에는 그가 과거에 키웠던 금붕어를 비롯한 다양한 품종들이 여러 포즈로 그려졌는데, 그것은 주황색으로 대표되는 형상을 세움으로써 제시한 가설적인 기호다. 이때 화면에 나타난 혼색된 주황들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바로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게 색의 중첩은 단순한 실험의 결과를 떠나, 개념, 체계 속에서 색이 지닌 존립의 문제로 뻗어간다.


수납장연작은 이러한 문제를 알레고리를 활용한 서사적 방식으로 드러낸다. 각 화면은 광물과 염료, 안료, 역사적 기록과 자연물을 서로의 크기에 맞추어 배치하며 오늘날의 분더캄머(Wunderkammer)’를 구성한다. 빨강 수납장(2024)파랑 수납장(2026) 등은 17세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도메니코 렘스가 문을 펼친 수납장의 외곽을 따라 변형한 캔버스에 그린 호기심의 방(1689)을 참고한 그림이다. 각각 빨강, 파랑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혹은 그것들을 상징하거나 그것의 안료로서 근원적 물질이 되는 대상들이 한 짝짜리 수납장에 모조리 모여 있다. 하나 혹은 두 개의 열린 문과 좁고 넓은 두 칸으로 나뉜 가운데 공간은 식물, 동물, 광물, 종이에 그린 그림, 물감이 얹어진 팔레트, 벽지, 유리병 등 온갖 종류의 자연물과 인공물을 포함한다. 수납장 투시에 맞춰 상단에는 천연 빨강 혹은 파랑 안료의 원물질과 격자 무늬 컬러 차트가, 하단에는 인공 안료 컬러 차트와 그 색으로 칠한 박제 동물이 배치되었다. 특히 장의 위아래를 넘나들며 자리하는 새, 카멜레온 등의 동물들은 19세기 자연사 분류학에서 자연물을 색 이름의 기준으로 삼던 역사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의 수납장은 물질문화적 수집의 즐거움인 동시에 색의 근원을 밝히려는 집요한 연구에 가깝다. 이는 색이 상징이기 이전에 희귀한 물질이었고, 값비싼 안료가 곧 위계를 의미하던 시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그 관심은 그렇게 간략한 향수(Nostalgia)에만 있지 않다. 그는 물감을 선택할 때 현대의 대체제인 (Hue)’ 대신 제뉴인(Genuine)’이 표기된, 즉 명칭과 성분이 동일한 천연 안료를 위주로 고른다. 단적인 예로 그림 속에서 연지벌레 형상은 코치닐 안료로, 청금석은 울트라 마린 안료로 칠한다. 또 다른 예로, 750 파랑과 갈색 조합(2026)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작품의 엑스레이 촬영본을 참조한 것인데, 그는 절대적이고 자족적인 검정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갈색과 파랑색을 중첩하는 전통 기법을 통해 검정이라는 완결된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 물질적 차이를 겹쳐 형성시키는 상대적인 효과로 모방한다. 이러한 기원과 결과값의 일치는, 사실적 재현을 뛰어 넘어 색의 근원을 증명하려는 열망에 훌쩍 다가간다.


이 모든 집요한 배열은 무엇을 향하는가. 색의 총합을 만들기 위함일까, 완전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일까. 그 답을 내려 보는 와중에, ‘과잉이 끼어든다. 수십 개의 색을 겹쳐 수백, 수천 개의 이미지 격자를 만들고, 빈 공간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형상들의 집합은 마치 오늘 존재하는 모든 색을 담아보겠다는 과밀화된 선언처럼 보인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지각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색의 범위는 예나 지금이나 제한적이다. 현재에 완결된 체계가 언제 얼마나 확장될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그의 컬러 차트와 수납장은 완결된 색의 목록을 욕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역시 이 시대에 가능한 한도까지 밀어붙인 임시적 전부일 뿐임을 인정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그의 화면은 하나의 용기, 하나의 보관함, 하나의 세계 모델이 되며, 그 안에는 세계의 일부만이 저장된다.


결국 조유정에게 중요한 것은 색 그 자체를 넘어선다. 그의 회화는 색의 목록을 완성하려는 시도라기보다, 그것이 축적되고 분류되어 온 시간들을 한 화면 안에 병치하는 아카이브적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근대 색채학의 체계, 안료 산업의 물질적 역사, 자연물에 기대어 형성된 명명법, 오늘날 수급 가능한 색의 범위까지 서로 다른 층위가 격자와 수납장 속에 공존한다. 이때 화면은 딱딱한 저장소가 아니라, 상이한 시대와 가치가 한 공간 안에 겹쳐 존재하는 헤테로토피아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구조를 떠받치는 것으로서, 그의 회화는 컨테이너가 된다. 연속적인 색을 단위화하고 계산 가능하게 만들며 비교와 병치를 허용하는 사유의 틀로서 컨테이너. 모든 칸을 꽉 채워 포화 상태로 맺어 버린 조유정의 회화는, 언제든 추가와 수정이 허용될 가능성을 조직하는 유연한 구조물이다.

 

–  김진주(독립 기획자)






조유정 Cho Yujeong

fineart0523@naver.com  @jyjjyjjuj


학력

2023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화과 판화전공 석사

2017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사


개인전

2026 영원한 경이, OCI미술관, 서울

2025 Color & Grid, 영공간, 서울

2023 Marble · Marbling · Marbled,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22 Veiling after Tracing,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2021 무늬 그림,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서울


단체전

2025 검은 악몽의 집단치료, 플레이스막3, 서울

2022 작가의 레시피, 서리풀청년아트갤러리, 서울

2021 The Novosibirsk International Triennial of Contemporary Graphic Arts, Novosibirsk State Art Museum,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수상 / 선정

2025 2026 OCI YOUNG CREATIVES 선정, OCI미술관, 서울